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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 칼럼

2021년 7월 25일: 사랑과 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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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on
댓글 0건 조회 11,309회 작성일 21-08-25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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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질투는 반대어입니다. 사랑은 자신도 남도 살립니다. 질투는 자신도 뼈가 썩고 (잠
14:30) 남도 죽입니다. 그런점에서는 반대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시며 소멸
하는 불’입니다(신 4:24). 이때의 질투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열심’(God’s jealousy) 이라고 합니
다.
사랑은 곧 질투입니다. 내가 누구를 사랑하는데 가운데 누가 끼어들면 그 꼴을 못 봅니다. 막
아야 합니다. 소멸시켜야 합니다. 사랑하는 나를 지키기 위한 ‘하나님의 질투’는 곧 ‘하나님의 사
랑’, 소멸하는 불입니다.
하나님은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자신을 죽여 나를 살리신
‘하나님의 사랑’은 또한 ‘하나님의 질투’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든지 나를 정결한 신부로
신랑 되신 그리스도에게 중매하시려고 그 사이를 방해하는 어떤 것도 다 소멸 시켜 버립니다.
고린도 교회에 쓴 편지에서 사도바울은 교회와 성도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신랑 되신 예수 그리
스도의 순결한 신부로 살아야 한다는 강력한 말씀을 보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고린도 교회는
점점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가 아닌 ‘타락한 신부’가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와
의 마음이 부패하게 하여 순결한 신부에서 타락한 신부가 되게 한 마귀의 속임에 어리석게 넘어
갔기 때문이라고 바울은 그 원인을 진단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자(gullible)는 자신의 욕심 때문에
쉽게 마귀에게 속아 넘어갑니다. 그래서 신랑 되신 예수님께 도달하지 못합니다(딤후 3:6-7).
오늘도 마귀는 첫째, ‘네가 하나님이 되어 너 하고 싶은 대로 살라’고 나의 ‘교만’을 부추깁니
다. 둘째, 마귀는 그리스도와 나 사이에 돈을 타고 들어와 주님보다 더 돈을 사랑하게 속여서 타
락한 신부가 되게 합니다. 셋째, 교만한 자리에서 돈을 사랑하며 사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편
안함’(complacency)에 안주하면서 전혀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네가 하나님이 되어 살라’에 속았습니다. ‘돈이 하나님이다’에 속았습니다. ‘지금이 좋사오니,
편안하게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에 속았습니다. 순결한 신부가 타락한 신부가 되어 그리스도에
게서 멀어져 갔습니다.
고린도 교회와 성도들의 모습이 내 모습은 아닌가요? 무슨 핑계로 나는 지금 믿음의 순결성
을 상실한 ‘타락한 신부’로 살고 있지는 않나요?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의 질투’를 회복합시다.
그래서 ‘주의 순결한 신부’로 살기 위하여 예수님 중심의 삶으로 구조조정하며 살아갑시다.
- 호성기 담임목사 Rev. 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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