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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 칼럼

2022년 1월 16일: 디지털 바벨론 시대에 새 계명의 정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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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on
댓글 0건 조회 11,604회 작성일 22-01-16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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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심령이 가장 괴로웠던 때 중의 하나가 가룟 유다의 배신을 아셨을 때였다. 제자 들은 누구일까 하고 서로를 의심하였다. 예수님은 유다에게 떡 한 조각을 주며 그가 하고 싶 은 일을 하라고 했다. 유다는 그 떡 조각을 받고도 예수님을 팔려고 한밤중에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간 후에 예수님은 바로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셨다. 새 계명이 있다면 옛 계명이 있었다. 옛 계명은 율법을 지키며 사는 것이다. 유다나 베드로처럼 다 못 지켰다. 율법을 지킬 수 있게 예수님은 새 계명을 주셨다. 내가 지킬 수 없는 율법을 다 완성하신 예수님을 믿는 자가 이루는 계명이다. 


 그 율법의 완성은 바로 ‘사랑’이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 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 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고 새 계명을 주셨다. 서로 사랑함으로 율법이 완성되어 간다. 


 디지털 바벨론 시대는 ‘정보의 홍수 시대’다. 사랑에 대한 정의를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이 시대의 바벨론인 디지털은 우리에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계속 유혹하고 있다. 새 정보, 신 상품 정보, 정보, 지식을 구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하는 것이라 고 하셨다. 


 세례요한이 와서 회개를 외쳤다. 율법을 잘 알면서도 행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라고 외치며 실천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것은 바로‘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 고 살라’는 사랑 실천의 촉구였다. 


 사람들이 그 실천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려달라고 하였다. 이 질문에 세례요한은‘사랑의 실천’을 어디서부터 할 것인지를 알렸다. 타작마당인 교회에서 이미 사랑을 실천하는 알곡과 실천 없는 쭉정이가 드러난다. 즉, 천국을 살 사람과 지옥을 살 사람이 이미 구별되어가고 있 다는 것이다. 


 첫째로, ‘가진 자’(Haves)가 ‘못 가진 자’(have nots)들에게 ‘가진 것을 나누어 주라’는 것이 다. 즉, 사랑의 실천은 주는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만, 세리들처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가정, 교회, 직장, 나라의 공동체에 있는 내규나 법을 잘 지켜 공동체를 지키 는 자가 사랑을 실천하는 자이다. 셋째는 군인들이 약한 자가 가진 것을 탈취하지 않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고 자족하며 사는 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요 사랑의 실천이라고 하였다. 바울도 자족함을 배웠다고 하였다. 


 헤롯은 자족하지 못하고 탐심으로 살았다. 삭개오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었다. 나는 가정, 교회, 공동체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살아가는가? 


호성기 담임목사 Rev. 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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