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0일: 디지털 바벨론 시대에 나의 평안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 안디옥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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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 칼럼

2022년 2월 20일: 디지털 바벨론 시대에 나의 평안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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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on
댓글 0건 조회 6,291회 작성일 22-02-20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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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은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다르다’(요14:27)라고 선포하셨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내가 손해 보지 않고 나의 평안만을 위하여 이기적으로 살 때 찾아진다. 어리석은 부자는 자신을 위하여 쌓아놓은 것에서 평안을 찾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날 밤에 하나님이 그 의 영혼을 부르시면 그가 누리던 평안도 끝이라 하셨다. 이렇게 디지털 바벨론 시대에 세상이 주 는 평안은 일시적이요 잠깐일 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화평이 아닌 ‘검’을(마10:34), 평안이 아닌 ‘불’을 던지러 오셨다고 하셨다 (눅 12:49). 그래서 가정과 교회 공동체에서 믿음의 사람과 믿음 없는 사람들이 분쟁하여 정체가 드 러나게 하신다.. 


  불과 검이 임하면 ‘나의 평안’과 ‘공동체의 평안’ 사이에서 갈등하기 때문이다. 이 모습을 보고 예수님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눅12:50)고 하셨다. 


  그 답답함을 예수님은 ‘나의 받을 세례’를 받으심으로 다 풀어주셨다. 예수님이 받을 세례, 예 수님이 마실 잔은 곧 십자가에서 자신을 화목제물로 희생하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는 것이다. 오 직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고 또한 사람과 화목하게 하신 것이다. 


  즉,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평안을 주시려고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로 오셨다. 예 수님은 돈 리챠드슨 선교사가 뉴기니의 사위(Sawi) 부족에서 발견한 ‘화해의 아이’로 오셨다. 주 님 자신의 평안이 아닌 우리 모두의 평안을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나, 나와 이웃 사이에, 그리고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영원한 평안을 주셨다. 


  그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나는 예수 안에서 지음 받은 ‘한 새 사람’ (a new man)이 되었다. ‘한 새 사람’의 핏속에는 예수님의 성품인 화평이 흐른다. 그래서 나도 나 의 평안이 아닌 가정과 교회와 공동체의 평안을 위한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로 살아간다. 


  오직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로 나를 화목제물로 드릴 때 나의 주변의 많은 사람에게 ‘평안’을 흘려보낼 수 있다. 그 평안은 영원하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자녀에게서만 흐르는 신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한나는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세 아들과 두 딸을 선물로 받아 집안이 평안을 누리 고 살았다. 야곱은 막내 벤자민을 포기함으로 벤자민도 요셉도 다시 찾아 공동체가 평안히 살았 다. 바울처럼‘교회 공동체를 염려하여’(고후 11:28) 자신을 화목제물로 드려라! 주님은 이렇게 자 신의 DNA를 흘려보내는 ‘화평케 하는 자’를 통하여 교회가 교회 되게 하신다! 


 호성기 담임목사 Rev. 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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