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19일: 사순절(四旬節) 기간중의 금식은 누가 왜 어떤 목적으로 하는가? > 안디옥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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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 칼럼

2023년 3월 19일: 사순절(四旬節) 기간중의 금식은 누가 왜 어떤 목적으로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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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on
댓글 0건 조회 1,777회 작성일 23-03-1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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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사순절을 지키게 된 이유는 간단하고 깊은 의미가 있었다. 누가 지키기 시작하였나?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새사람이 된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예수님이 고난받으신 40일을 살기 시작하였다. 


 ‘내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1). 왜? 나에게 생명을 주신 예수님 의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스스로 깨달아 살기 위함이었다. 즉, 경건(godliness),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나도 살아가기 위함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목적으로 시작된 금식이 ‘경건의 모양’으로 종교화, 외식화, 형식화로 변질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죄에 대하여 죽지도 못하고‘경건의 능 력’은 사라져 버렸다. 이사야의 시대처럼 주님이 싫어하시는 금식을 밥 먹듯이 하며 살았다. 


 예수님의 시대에도 에피쿠로스파(Epicureans)와 스토아파(stoics)가 좋은 예였다. 그들의 금식 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아니었다. ‘쾌락주의자’인 에피쿠로스파에 속한 사람들은 금식하면 서도 온갖 오락과 자신들의 만족을 위한 삶을 살았다. 스토아파는 자신들의 육신에 고통을 가하 면서 그들도 자신들의 의를 위하여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의 모형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이 보여 주셨 다. 3년의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예수님은 40일을 광야에서 금식하셨다. 앞으로 무엇 때문에 사실지 목적을 선포하셨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공의와 정의 없는 사회에서 소외당하 고 수탈당하는 압제당하는 자들의 아픔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을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로 자유롭게 하는 목적이었다. 내가 곡기를 끊고 고난을 당하면서 여러 가지로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만족과 나의 풍요를 위하여 수단 방 법 가리지 않고 욕심으로 살아가는 삶을 회개하는 것이다. 


 내가 이만큼 너무 넘치게 살아감으로 누군가는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러므로 나는 은혜를 받을 만큼 받았으니 이제부터는 ‘주는 삶’으로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나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 살아간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실천하며 살아가 ‘경건의 모양’이 아닌 ‘경건의 능력’ 있 는 삶의 실체요 본질이다. 이사야는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 것은 ‘가난한 자들’(아나빔(ים ִ֗ וָנֲע((을 찾 아오셨다. 그리고 그들이 무너진 곳, 황폐한 사람들을 살리는 복이 되게 하신다. 사순절이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사순절로 살자.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호성기 담임목사 Rev. 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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