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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29일 안디옥칼럼: 물세례탕에서의 물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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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 2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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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물세례탕에서 물세례를 베풀고 있습니다. 아니 장로교회에서 침례교처럼 침례를 베푸는 것인가요? 장로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물을 뿌려서(sprinkle) 세례를 주는데 왜 안디옥교회에서는 물속에 잠기는 물세례를 주나요? 여러분들 가운데 이런 질문이 당연히 있을 줄 압니다. 그래서 이번주 수요일 저녁에 있을 물세례의 의미를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물세례는 세례 요한이 베푼 ‘회개하게 하기 위한 세례’(마3:11) 였습니다. 교회에서는 이 물세례를 가지고 해석들이 분분하였습니다. 세례는 ‘물로 씻는다’는 뜻이고 침례는 ‘물에 담근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이나 북아프리카 등 초기 기독교 복음이 전파된 곳 중에는 물이 너무 귀한 곳들이 많았습니다. 그리하여 아주 소량의 물을 가지고 죄를 회개하고 씻는 것의 상징으로 물을 뿌려서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분명히 선포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 요한은 물세례를 통하여 죄를 회개하게 하였지만 뒤에 오시는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리라’(마 3:11)고 선포하였습니다. 회개하는 표시로 물세례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는 것’ 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회개하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행 2:38)고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물을 뿌리던지 물에 잠기던지(침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불과 성령으로 세례 받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물은 겉을 씻지만 불과 성령은 심령을 변화시킵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벧전 3:21). 물을 뿌리던, 침례로 잠기던 그것은 모양과 의식에 불과 합니다. 성령과 불 세례로 심령이 변화되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진정한 세례인 것입니다.
고넬료의 집에서 베드로는 이방인들이 성령세례를 받는 것을 보고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행 10:47)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성령세례로 심령이 변화 받은 사람이 교회 앞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물세례입니다. 그런데 물에 잠기는 물 세례는 그 의미가 강하게 보여지기 때문에 할 수만 있다면 어떤 목사님들도 선교지에 가면 침례를 베풉니다. 물에 잠기는 것은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을 상징하고 물 속에서 나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살아나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런 신학적, 성경적인 이유로 우리는 물 세례탕에서 세례를 베풉니다.
- 호성기 담임목사 Rev. 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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