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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 칼럼

2022년 3월 20일: 디지털 바벨론 시대에 선하게 산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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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on
댓글 0건 조회 5,743회 작성일 22-03-20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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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바벨론 시대의 특징 중의 하나는 마지막 말세의 특징과 맞아떨어진다. 사람들이 점점 악해지고 사나워진다 (딤후 3:3). Netflix를 통하여 소위 대박 난 ‘오징어 게임’에서 이 시대 인간 의 잔인함의 극치를 본다. 


 옛날에는 알지도 듣지도 못하였던 전쟁의 실제 상황을 전 세계가 안방에서 실시간으로 다 보 고 산다. 악하고 잔인한 인간 죄성의 실체를 본다. 그와 동시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저 들을 아무 대가 없이 돕는 선하고 착한 수많은 사람을 본다. 그 선함을 우리는 말하는 것인가? 


 한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선한 선생님이여 어떻게 하면 내가 영생을 얻나요’라고 물었다. 전 통적으로 선생들은 선하다고 칭함 받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선한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고 하셨다 (막 10:18). 


 그렇다. 성경이 가르치는‘선함’, ‘양선’, ‘착함’은 곧 하나님의 성품이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 도 분명 선한 것이지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에게는 신의 성품인 ‘양선’ 즉, 하나님의 DNA가 흐른다.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선함’과는 차원이 다르다.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하셨다. ‘양선’한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 왜? 잃어버린 양을 찾아 자신의 피로 그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세우시기 위함이 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핏속에 흐르는 ‘양선’, ‘착함’의 신의 성품이다. 나를 희생하여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가두어 두지 못하는, 흘러넘치는 신의 성품이다. 


 예수를 안 믿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아도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전장으로 죽으러 달려가는 애국자가 지금도 많다. 우크라이나 전장으로 죽으러 달려가는 우크라이나계 미국인들은 진정 애 국자요 나라와 민족을 살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죽음으로 자신을 희생하여도 그들의 죽음이 죄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의인으로 서게 하여 영적으로 구원함을 얻게 하지는 못한다. 


 죄인들에게 ‘양선’을 베풀어 죄인을 의인으로 영혼을 살린 대표적인 사람이 바나바였다. 영적 으로 살리는 일을 너무 잘하여 사도들이 그의 본래 이름인 요셉 대신에 별명으로 바나바라고 불 렀으니 그 뜻은 살리는 자다. 


 그는 사울처럼 인정받지 못하는 자를 인정받게 살리고, 마가처럼 죄짓고 선교 여행 중에 도망 간 자를 바울과 싸우고 헤어져도 끝까지 보듬어 살렸다. 그가 ‘양선’을 흘려보내 살린 자들은 모 두 쓸데없는 자에서 유익한 자로 변화 받아 바나바와 똑같은 살리는 자로 변화 받았다. 그 신의 성품을 흘려보내라! 내가 죽어 많은 사람을 살리는 ‘양선’으로 열매 맺으며 살라! 


호성기 담임목사 Rev. 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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