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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 칼럼

2022년 9월 25일: 디지털 바벨론시대에 헌금은 누가 왜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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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on
댓글 0건 조회 263회 작성일 22-09-25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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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은 디지털 바벨론시대의 세상 문화 풍조를 역류하며 산다. 10대가 유튜 버가 되어 부자가 되니 젊은이들은 무슨 수를 쓰든지 25살 전에 부자로 성공하기 원한다. 성공하 려면 쟁취하든지 탈취하여야 한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교회에 헌금으로, 시간으로 ‘드리며 사는 삶’을 싫어한다. 남보다 더 ‘모아 서’ 부자 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고 하였다. ‘예수님이 뜻을 이루시도록 나는 그의 길을 예비하는 종으로 낮아지리라!’ 그는 역류하였다. 


  바울은 마게도냐에 있는 교회들을 방문한 후 고린도 교회로 갔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마 게도냐 교회들의 그리스도인들을 소개하였다. 그들은 바울 선교팀이 전해준 복음으로 영혼의 구원을 받았다. 극심한 환난과 가난 속에서도 기쁨으로 풍성한 헌금을 하여 예루살렘교회 성도들 을 섬겼다.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자원하였다. 힘에 넘치도록 헌금하였다. 기근으로 가난해진 예루살 렘교회 성도들을 섬기는 일이 ‘은혜’라 하였다. 그들 자신이 가난 속에서 살았지만, 영혼 구원받 은 기쁨으로 헌금하였다. ‘받는 것’이 은혜라 하는 시대에 그들은 ‘주는 것’이 은혜라 하였다. 역류 하였다. 


  쟁취하고 탈취하며 자신의 성공만을 위하여 살아가는 디지털 바벨론 시대에 누가 헌금하는 가? 자신을 낮은 자리에서 가난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부유하게 하시려고 시대를 역류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고 시대를 역류하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이다. ‘받는 은혜’에서 ‘주는 은혜’ 로 사는 사람들이다. 


  바울은 디도를 고린도 교회에 보내어 일 년 전에 작정하였던 ‘드리는 삶’의 은혜를 성취하라 고 독려하였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복음전파로 주께 거저 받은 믿음과 지식의 풍성함 이 마게도냐에 있는 교회들의 성도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하였다. 그런데도 일 년 전에 작정 해놓고 이 핑계 저 핑계로 ‘주는 삶의 은혜’를 실천하지 않았다. 나는 작정한 것을 실천하는 가? 


  바울은 명령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풍성한 은혜를 받았으면 이제는 ‘드리는 삶’의 은혜를 성취하여 영혼 사랑의 진실함을 스스로 증명하라고 도전하였다. 예수님도 충성되고 진실 한 선한 재물의 청지기는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자라고 하셨다(마 24:45). 바울도 ‘주는 것이 받는 그것보다 복이 있다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라’(행 20:35)고 하였다. 


  왜 헌금하여야 하는가? 나를 스스로 가난하게 하여 헌금을 드리면 그것이 가난한 자를 영적, 육적으로 부요하게 하는 ‘균등하게 하는 것’ 곧 equalizer가 되기 때문이다. ‘중단없는 선교’는 ‘드 리는 은혜’를 중단없이 실천하는 자들에 의하여 계속되어왔다. 왜? ‘드리는 자’도 누군가의 헌금 으로 영육 간에 부함을 많이 ‘받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드리는 은혜’를 성취함으로 선한 재물 의 청지기가 되어 모두를 ‘균등’케 하는 equalizer로 살아가리라! 


 호성기 담임목사 Rev. 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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